C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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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도 숨을 쉬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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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건 분명해요. 하지만 따뜻하고 다감한 흐름과 분위기를 놓칠 수 없었어요.” 올해 2월 용인 수지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이병희, 조진경 부부의 바람은 하나였다. 두 아이 재형(5세), 재익(3세)과 함께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심플하면서도 오래 볼수록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 꼭 필요한 기능을 극대화하고 나머지는 비워내 빈틈 그대로를 누리며 활용하고자 했다. 휑하다기보다 단순하면서도 본질 자체에 접근해 공간과 물성이 빚어내는 은근한 멋을 즐기고 싶었다. 말이 쉽지, 기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춰야하는 까다로운 작업임이 분명하다. 조진경 씨가 이스크 디자인의 이윤아 실장과 손을 잡은 이유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스타일을 가장 잘 꿰뚫고 있는 친구인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집은 백스테이지라고 생각해요. 문밖으로 나서는 순간, 무대 위 런웨이가 시작되지요. 그런 만큼 충분한 휴식의 공간이자 자유롭고, 동시에 완벽한 준비가 가능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머무는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얼만큼 잘 반영하느냐지요. 언제나 그걸 염두에 두고 작업해요.” 그래서일까, 이윤아 실장은 새삼 친구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고객으로서 조진경 씨와 그의 가족을 바라보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자 아내, 집에서도 업무를 이어가야 할 때가 많은 남편,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 여기에 심플하면서도 포인트 인테리어를 즐기는 조진경 씨의 감각까지. 화이트를 바탕으로 하되 질감으로 변화를 주고 원목 가구와 포인트 타일로 개성을 살린 공간이 그들만의 백스테이지로 거듭난 배경이다.


과감한 구조 변경을 통한 새로운 쓰임
이스크 디자인은 조진경 씨의 바람을 토대로 최대한 깔끔하게 매립하고 불필요한 공간을 없애는 데 주력했다. 형태의 핵심만을 표현하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덜어내고 선과 면의 깨끗한 미감을 담아냈다. 169m²의 공간은 거실과 주방을 비롯해 총 4개의 방과 2개의 화장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좁고 활용도가 낮은 주방은 구조를 변경해 재구성했다. 원래 방문이 있던 자리를 과감히 막고 냉장고와 키 큰 장을 들여 효율성을 높인 것. 여기에 넓은 아일랜드를 더해 편리함과 수납공간을 확보하고 천장 높낮이로 구분했다. 또 주방 바닥은 포인트 타일, 다이닝 공간은 원목 마루로 변화를 주어 자연스레 공간을 구분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어찌 보면 주방만큼 독립적인 공간도 드물어요. 하지만 다이닝, 거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다 보니 되레 지저분한 인상을 줄 수 있어요. 답답한 가벽 대신 타일이나 조명 등 숨은 장치로 공간을 구분했는데 그 결과가 만족스러운 부분 중 하나예요. 거실과 마주 보고 있어 아이들을 보며 요리할 수 있다는 점도 좋고.”

후드를 아일랜드 쪽으로 달고 간접 조명을 넣어 주방과 다이닝 공간을 자연스레 분리했다. 바닥 타일 역시 아일랜드와 키 큰 장 부분까지만 타일로 연출해 차별화를 꾀했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디테일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원래 방문이 있던 곳을 벽으로 마감해 구조를 변경한 주방. 냉장고와 키 큰 장을 들여 효율성을 높이고, 그 옆으로 무지주 바 테이블과 스툴을 놓아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멀티 공간을 완성했다. 간단한 컴퓨터 작업이나 독서, 티타임도 가능하다.


폭이 좁은 형태의 수납장은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와인잔이나 각종 찻잔을 수납하기에 유용하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마감해 포인트가 되는 공간에 힘을 주고 가구를 돋보이게 한 거실. 바닥재는 독일의 바닥재 비파르퀴트(Wiparquet)를 사용해 무게감 있고 고급스럽게 연출했다. 암적갈색 TV장은 멀바우 원목을 사용해 더 우드 숍에서 맞춤 제작했으며 커튼은 윈도우앤스타일(광교점) 제작 제품.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으레 식탁 테이블이 자리하는 곳에 심플한 무지주 바 테이블과 스툴을 놓아 다양한 활용도의 멀티 공간을 꾸몄다. 안방 역시 발코니로 이어지는 공간을 확장하고 단창을 설치해 보다 아늑하게 연출했다. 유일하게 침대와 협탁만을 놓아 오직 휴식과 수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공간. 사실 미니멀리즘을 위한 미니멀리즘은 자칫 실생활이 불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실용성을 고려하는 게 먼저다. 여러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집을 도화지 삼아 그 안에서 차근차근 뺄셈과 덧셈을 해야 한다는 게 이윤아 실장의 조언이다.


강약중간약, 집에도 리듬이 필요해
“주방과 함께 가장 고민한 부분이 현관과 중문이에요. 담백함 속에 포인트가 될 만한 게 있었으면 했어요. 연그레이 톤의 컬러부터 팔각 모양의 창, 골드 컬러의 매끈하게 구부러진 손잡이까지 꽤 오랫동안 함께 의견을 교환해 주문 제작을 했어요.” 심플함의 매력은 덜어낼수록 또렷해진다는 거다. 간결한 의상에서 액세서리가 더욱 빛나는 것처럼, 이 집의 곳곳에서도 그와 같은 인테리어를 발견할 수 있다.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하게 해석한 중문이나 유일하게 블랙으로 처리한 욕실 문 등이 그렇다. 포인트를 줘야 할 부분을 철저히 계산해 강해야 할 부분에선 자유롭게 표현하되 그 외 부분에서는 절제한 결과다. 현관앞에는 슬림한 형태의 폴딩장을 제작해 별도의 수납공간도 마련했다. 현관부의 자투리 공간을 제대로 활용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집의 구조는 이렇게나 담백하다. 천장과 바닥, 벽과 창틀 등 집의 골격이야말로 생활을 담아내는 그릇이라 할 만한데 덕분에 안정감 있는 인테리어가 완성되었다. “욕실 문 하나를 제외하면 방문을 모두 화이트로 통일해, 닫으면 마치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처럼 연출했어요. 거기에 가구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하고 바닥재를 무게감 있는 컬러로 선택해 고급스러움을 더했지요.” 각 공간의 넉넉한 비율, 붙박이장의 세부적 디자인까지 함께 챙긴 이윤아 실장과 조진경 씨는 원목 가구를 주문 제작하는 데에도 의견을 모았다. 디자인과 색감은 물론 다양한 수종의 결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았다.

과감한 스타일로 완성한 욕실. 블랙&화이트의 공간에 아르떼 스타일의 타일로 유니크한 공간을 연출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던 하부장과 선반장을 철거하고 화이트 매트의 폴딩 도어형 장을 설치했다. 외투와 아웃도어 용품 등을 수납할 수 있어 외부로부터 묻혀 온 때와 물기를 차단해준다. 실용성을 살리면서도 깔끔하게 디자인한 센스가 돋보인다.


연그레이 컬러에 팔각 창과 몰딩 모양으로 독특하게 연출한 현관 중문. 유광 골드 손잡이가 클래식하면서도 차분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바닥은 헥사곤 타일로 재미를 주어 집의 첫인상을 완성했다.


오래 볼수록 좋은 것
“비우기 위해서는 정말 소중한 것들만 곁에 두어야 하잖아요. 실제로 사용하는지, 정말 아끼는지, 혹은 반드시 필요한지 등등. 앞으로도 정말 가치 있고 오래 볼수록 더 좋아지는 것들만 들이려고요.” 그런 결심에도 불구하고 가장 너그러워지는 곳이 있으니 바로 두 아이의 방이다. 색과 구도 등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했다지만 아이들의 방에서만큼은 조금 더 많은(?) 물건을 만날 수 있다. 나란히 놓은 침대와 수납과 놀이를 겸할 수 있는 벤치는 모두 제작 가구로,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 특히 벽 안쪽에 마련한 박스형 벤치는 긴 폭을 이용해 책장을 넣고, 안쪽에 잘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장으로 구성해 활용도를 높였다. “인테리어를 할 때에는 어느 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꼭 고려해보아야 해요. 그래야 내게 꼭 맞는 맞춤 공간을 완성할 수 있어요. 가끔은 아파트에 나의 생활 패턴을 맞춰가는 게 아닌가 점검해보는 일도 필요하지요.” 버리고 비우기에 앞서 살펴보아야 할 건 내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거기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챙겨보는 일일 터. 요란스럽지 않으면서 본연의 멋에 충실하며 조화로운, 간결하고 힘 있는 공간은 그렇게 탄생한다. “얼마 전에 고심 끝에 선인장을 들였는데, 참 좋더라고요. 생기도 느껴지고. 선이 곱고 우리 집에 잘 어울리는 식물을 더 들일 생각이에요. 먼저 제 자리부터 찾아보고요.(웃음)” 집은 사실 그 자체로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우리가 숨을 쉬는 일처럼, 집도 공간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 단순히 심플하게 비우는 걸 넘어 조화와 균형으로 완성한 무(無)의 틈이야말로 집을 쉬게 하고, 나아가 그 사이사이에 우리의 삶을 누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여백이야말로 오래 볼수록 좋지 않은가.
시공 및 디자인 이스크 디자인(031-718-1275, www.yskdesign)

좁은 공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나란한 2개의 침대를 ㄱ자로 배치한 아이 방.


아이 방은 원목 가구와 잘 어울리는 그린을 메인 컬러로 삼아 소품과 패브릭을 통일했다.


방 한쪽에는 심플한 수납장을 두어 흐트러지기 쉬운 장난감과 옷가지를 정리하도록 했다.


수납과 놀이를 겸할 수 있도록 주문 제작한 벤치. 폭이 깊은 벽 안쪽으로 박스형 벤치를 제작해 수납장을 마련했다. 박스 윗부분에는 쿠션매트를 깔아 아이들이 보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더 우드 숍 제작 제품.

2017년 6월
Editor 홍지은(프리랜서) Photographer 김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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