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응하는 디자이너의 자세 하우징 October, 2020 지루하게 내린 여름철 장맛비는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건축물까지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자연 앞에서 보잘것없는 인간의 존재를 절감한 동시에,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고민한다.

작품과 거주성,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지켜보며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던 건축가들 중에 르코르뷔지에는 콘크리트와 유리만으로 자신만의 건축 원칙을 세웠다. 설계한 건물들의 구조와 재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근대 건축의 5가지 원칙이 된 옥상 정원,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파사드를 만들어냈다. 그는 1929~31년에 이르러 빌라사보아 주택에 이 원칙을 모두 적용했는데, 노출 콘크리트를 주택에 처음으로 시도했고 신공법과 새로운 공간 구성 등을 철저하게 적용한 건축물이다. 이를 통해 후대까지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로 남게 되었음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니 그림자도 분명하다. 창이 넓어 전망은 좋지만 난방이 잘되지 않고, 비만 오면 평평한 옥상이 저수조가 돼서 아래 방으로 물이 샜다. 경사로와 천장으로도 비가 들이쳐 급기야 건축주 부인이 건축가에게 해결을 촉구하는 편지를 쓰기에 이르렀다. 결국 건축주의 아들이 폐렴에 걸려 요양원에 가게 되고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에 소송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 주택을 설계함으로써 르코르뷔지에는 이 시대의 위대한 건축가로 남게 되었지만 실제로 여기에 사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
또 하나 물과 더불어 생각나는 주택이 있다. 미국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알려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이다. 폭포 위 바위에 기초를 세우고 캔틸레버 구조로 각각의 공간이 형성되는데 외부에서 보면 마치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물은 대지에서 자라 나와야 한다”는 그의 유기적 건축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한 아름다운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수평 콘크리트면을 물 위에 걸쳐두어 9m 아래 흐르는 물에 비치게도 하고, 내부의 벽을 유리로 만들어 숲이라는 거대한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실험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집 역시 펜실베이니아의 겨울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와 배치로 건축주의 실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물의 한기로 인한 추위와 시끄러운 폭포 소리 때문에 건축주가 신경쇠약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 채 집을 비우게 되었고, 1964년부터는 박물관으로 그 용도가 바뀌었다고.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지은 집에서 자연 때문에 살 수 없게 되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건축가로서 이러한 이슈를 바라볼 때마다 고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연 우리의 건축, 나의 건축은 자연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 위대한 작품과 사용자의 거주성은 동시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일까?


숲속의 작업실을 콘셉트로 지은 옷칠 작가 허명욱의 작업실. 언제든 열기만 하면 내외부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폴딩 도어 방식으로 자연 속 건축을 표현했다.


20세기 미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폭포 위로 길게 내민 캔틸레버 구조로 지은 이 건물은 자연과 건물의 혼연일체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건축가로 하여금 작품과 실제 거주성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게 한다.



긴 장마의 끝자락, 물과 건축의 관계를 고민하다


이번 여름, 유례없는 물과의 긴 싸움에 곳곳의 건물들 역시 여기저기 새로운 틈새가 생기고 물이 새기도 했다. 혹여나 설계한 건축물의 배수로가 막히지는 않았는지, 방수는 제대로 했는지. 요즘은 자연과 건축의 관계뿐만 아니라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난해 지어 입주를 마친 허명욱 작가의 숲속 작업실은 내외부의 경계를 허문 자연 속 공간이다. 넓고 높은 폴딩 도어를 설치, 언제든 이 문을 열어 자연과 하나 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실내와 테라스의 바닥 높낮이를 같게 해 안팎이 심리적 공간적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자연의 장점을 품을 수 있는 설계만큼이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치도 곳곳에 숨어 있다. 옆 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빗물을 모아 한길로 내려보낼 수 있도록 건물 주위로 트렌치를 만들고 모서리면마다 집수정을 설치했다. 삼각형 모양의 긴 박공지붕 아래 모든 면에 물이 모일 수 있는 홈통을 달고 이를 기둥에 숨겨 땅속 배수구로 빗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도 있다. 비가 많이 온 이번 여름에 이러한 배수구, 홈통, 처마와 창문, 캐노피 등 등 물과 관련한 요소들이 건물의 수명을 늘리고 건축주의 생활의 쾌적함을 도왔음은 틀림없다.
재생 건축, 리노베이션 공간에서 자연에 대처하는 문제는 더 도드라진다. 오래된 건물은 구조의 보강뿐 아니라 방수와 배관, 배수까지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 1957년 지어진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비마이 게스트 사옥은 세월의 흔적이 남도록 보존해야 할 부분을 검토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먼저였다. 구조나 재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남길 것, 버릴 것에 대해 토의하는 과정을 거쳤고, 그렇게 탄생한 공간들은 시간의 기억을 품은 채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사용자의 거주성을 맞추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다른 예술가와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의 다른 점일 테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고쳐서 쓰는 건축’의 경우에는 오래되었지만 고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투입되는 자본과 노동력은 얼마만큼인지에 대한 정량적, 정성적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이를 만드는 디자이너의 인식 역시 달라져야만 한다. 우리가 과거에 알던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고 새로운 지식과 테크놀로지를 공부해야 하는 요즘, 우리가 마지막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곳에 사는 이의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테라스와 실내의 높낮이 차이를 없애 개방감을 극대화한 허명욱 작가의 작업실 2층 풍경.


60년 넘은 양옥을 대수선한 비마이게스트 사옥.
남길 부분과 새로운 마감을 입힐 곳을 정하고 디자인뿐 아니라 시공까지도 신경 쓰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다.



건축가 이성란 | 이건축연구소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재학 중 도미해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건축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엘바사니 앤 로간 건축사무소에 근무한 후 귀국, 아키플랜 건축사사무소, 중원건축, 시건축 등에서 실무를 익힌 뒤 이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을 통해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며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공간을 만든다.

Editor정사은

Photographer이성란